가끔은 목적 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.
정해진 길이 아니라
발길 가는 대로 아무 방향으로나 걷는 그런 날.
무계획으로 나선 산책이
계획된 하루보다 더 나를 편하게 해줄 때가 있다.
길을 따라 걷는 동안,
마음속 무게가 천천히 내려앉는 걸 느끼곤 한다.
집 앞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
전에 보지 못했던 작은 화분이 눈에 띄고,
가게 앞 유리문 너머 사람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.
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걷는다는 것,
속도를 신경 쓰지 않고 발을 내딛는다는 건
생각보다 더 큰 해방감을 준다.
이어폰도 끼지 않고, 음악도 틀지 않는다.
그저 주변의 소리에 집중한다.
바람 소리, 지나가는 차 소리, 멀리서 들리는 사람 목소리.
이름도 모르는 동네의 공기 속을 걷는 이 느낌은
정리되지 않던 머릿속을 천천히 정돈해준다.
생각이 많아질수록 몸은 가만히 있기 어렵다.
움직임이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
머릿속에서 맴도는 감정은 점점 커진다.
그럴 때는 이 산책처럼
생각보다 먼저 몸을 꺼내는 것이
내게 가장 필요한 정리다.
돌아오는 길엔 걷기 시작할 때보다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.
무엇을 해소한 건 아니지만
무언가를 안고 돌아오지도 않는다.
그저 다시 평소의 나로 돌아와 있다는 감각.
무계획이라는 말이 꼭 무의미한 건 아니라는 걸
이 산책이 말해준다.